대출 규제에 무주택 청년층은 박탈감
유주택자는 세금·정책변화에 불안감

인공지능(AI) 산업 호황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과 근로자들의 소득이 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한국의 AI 부동산 붐이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서울 주택시장의 상승세를 집중 조명했다.
FT는 AI 열풍이 한국의 수출과 기업 실적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 과실이 부동산으로 흘러들면서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첫 1년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14% 상승했다. 최근 2년간으로 범위를 넓히면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이 30%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도이체방크 자료에 따르면 서울 도심 아파트 가격은 1㎡당 2만5545달러(약 3400만원)로, 2016년보다 128.5% 상승했다. 조사 대상 69개 도시 가운데 홍콩과 취리히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AI발 반도체 호황에 따른 자산효과는 수도권 남부 반도체 산업단지 인근, 이른바 ‘셔세권’ 지역에서도 두드러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호황이 관련 근로자들의 소득과 자산 증가로 이어지면서 주변 주택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화성 동탄 아파트값은 지난 9월 중순 기준 연초 대비 약 15.99% 상승하며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고, 국민평형 전용 84㎡ 실거래가도 20억원을 넘어섰다.
다만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을 AI발 반도체 호황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서울의 공급 부족과 재건축 기대, 대출 규제, 수도권 내 지역별 규제 차이 등도 주택가격을 움직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FT는 이 같은 집값 상승이 한국 경제와 정치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문제를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또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규정하고 가용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집값 상승세를 잡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가구를 착공한다는 기존 계획의 이행력을 높이는 동시에, 수도권에 23만가구 이상을 추가 공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 규제가 오히려 청년층의 주택 구입을 어렵게 만들며 박탈감을 키우고 있다. FT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한 31세 직장인 사례를 소개했다. 결혼 당시 매입했더라면 살 수 있었던 아파트가 현재는 약 19억원으로 올라 사실상 구매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희망이 없고, 그저 집을 놓칠까 봐 두렵다”라고 전했다.
집을 가진 사람도 사정은 복잡하다. 서울 부촌에 아파트 세 채를 보유한 57세 여성은 다주택자에 대한 정부의 증세 기조에도 불구하고 집은 팔지 않고 관망할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그는 “양도소득세가 너무 높아져 팔 수 없다”라고 운을 떼며 변동성이 극심한 주식 시장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차라리 다음에 보수 정권으로 바뀌고 정책을 바꿀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재명 정부로서는 집값 상승세를 억제하면서도 기존 주택 보유자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무주택 청년층의 주택 구매력을 높여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게 됐다.
특히 서울 집값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다. FT는 급등한 서울 주택 가격이 2022년 대선에서 당시 여당의 패배에 영향을 미친 요인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인식됐다고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부동산”이라며 “대출을 제한하면서 어떻게 집을 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