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초고가 아파트 래미안 원베일리에 '2026년생 입주민 자녀'만 가입할 수 있는 육아 모임이 생겼다. 입주민끼리 소개팅을 하고 다른 아파트 단지와 체육대회를 연 데 이어, 갓 태어난 자녀들까지 같은 단지 안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거에는 학교와 직장, 고향이 대표적인 인맥의 고리였다면 최근에는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새로운 연결고리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에서는 비슷한 생활권과 주거 환경, 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아파트를 매개로 만나고 교류하는 이른바 '아파트연(緣)'이 형성되고 있다.
이를 두고 시각은 엇갈린다. 비슷한 환경에 사는 이웃끼리 육아 정보를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자연스러운 생활공동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자산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관계를 맺는 '계층의 울타리'가 더 견고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26년생도 '입주민 인증'… "이사 가면 탈퇴"
12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한 플랫폼 앱에는 '원베일리 키즈 26'이라는 모임이 개설됐다. 개설자는 "원베일리에서 함께 자라는 2026년생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모임"이라며 "아이들에게는 함께 자라는 동네 친구를, 부모에게는 오래 교류할 수 있는 이웃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가입하려면 현재 원베일리에 실제 거주해야 한다. 거주 여부를 인증해야 하고 이사하면 탈퇴해야 한다. 입주 예정자 역시 실제 입주한 뒤에야 가입할 수 있다.
원베일리는 전용 84㎡(34평형)가 최근 50억~70억원대에 거래되는 반포의 대표적인 초고가 아파트다.
온라인에서는 "아이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사는 아파트에 따라 친구 관계가 갈리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입주민들은 같은 단지 부모들이 육아 정보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가까운 또래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본다.

◇소개팅에 '아파트 연고전'까지… 집이 인맥 커뮤니티로
원베일리에서 아파트를 매개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3년에는 원베일리 거주자와 소유자의 미혼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소개팅 모임 '원결회'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5월에는 회원 약 100명이 한강에서 요트를 타며 소개팅하는 행사도 열었다.
지난 5월에는 원베일리와 인근 메이플자이 입주민들이 친선 체육대회를 열었다. 스크린골프와 농구, 탁구 경기에서 각자 자기 아파트를 응원하면서 연세대와 고려대 정기 교류전을 빗댄 '아파트 연고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파트를 매개로 한 만남은 결혼 시장으로도 번졌다. 원결회는 '아파트 결혼 문화'를 내걸고 결혼정보회사 '원베일리 노빌리티'를 만들었고, 현재는 가입 대상을 강남·서초 거주자 등으로 넓혔다.
아파트 거주지를 기반으로 상대를 연결하는 소개팅 앱 '아파팅(APTING)'도 나왔다. 아파트 거주 여부를 인증하고 원할 경우 소득 수준과 직장 등 경제적 조건도 등록할 수 있다.
과거 학연이나 지연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묶었다면 이제는 아파트가 새로운 인맥 형성의 단위가 되고 있는 셈이다.
◇"생활공동체" vs "계층 울타리"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거에도 학력·직업·소득 등 사회·경제적 조건이 비슷한 사람끼리 관계를 맺고 결혼하는 '동질혼' 현상은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아파트가 개인의 경제적 배경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처럼 집값이 높고 단지별 가격 차이가 큰 지역에서는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비슷한 자산 수준과 생활권을 가진 사람들을 묶어주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동질혼 현상은 있었다"며 "지금은 아파트라는 부동산을 통해 자산 수준이 한눈에 드러나다 보니 입주민 간 결속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를 곧바로 '부유층끼리의 폐쇄적 인맥 형성'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어느 동네에서나 공동육아나 운동 모임, 주민 친목회는 존재해 왔고, 대규모 아파트가 많은 한국에서는 과거 골목이나 마을이 했던 공동체 기능을 단지가 대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